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조선시대 사극 찍을 때 백성 입장에서 본 왕,양반들 시각으로 만들지말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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 조선시대 사극 찍을 때 백성 입장에서 본 왕,양반들 시각으로 만들지말고 사마천 사기랑 한서 후한서 정사 삼국지 진서 자치통감 서경 예기 역경 논어 대대례기 이런거  싸그리 달달 외우고 머리 속에 습득해서 상소할 때에도 엄청나게 긴 장문은 기본으로 적는 실제 그대로의 조선 신하들과 왕을 그대로 묘사해주면 좋겠음. 저 사진에서 노란 기와 화려한 황제궁 없애고 소박한 경복궁 척 붙이고  저 노란 손톱깍지 모양 매미날개 붙은 모자(익선관) 쓰고 노란 목깃 둥근 훌렁 훌렁 옷(단령) 입은 저 사람의 옷 색깔을 빨간 색으로 바꾸면 딱 명나라의 지방 정권의 군주인 조선 왕임. 전하 아니되옵니다 아니되옵니다 그것은 안되옵니다 전하 통촉하여주시옵소서 맨날 이런 식의 말만 반복하는 고리타분한 병신들로 묘사되는게 현재의 조선 시대 사극의 현 주소. 바꿔야함.  그리고 임진왜란 때 조선이 대비못했다고 하는데. 대비안하는척하면서 몰래 몰래 싹 대비하고, 심지어 대담하게 충주 탄금대 앞 달천평야로 일본군을 유인하는 작전까지 했다는걸 조선왕조실록,징비록,난중잡록 등 여러 조선 기록들과 프로이스 일본사의 사료 교차 검증으로 증명될수있음.  내가 수천만번 인터넷에 글 쓰며 증명했고. 조선 시대 사극이나 조선 시대 영화를 자꾸 백성 타령하는 장군이랑  아니되옵니다 아니되옵니다하는 신하들이랑 듣기싫소! 이순신이 감히...하는 조선 왕 이렇게만 묘사하니까 진짜 식민사관 그 자체임.   의병장 곽재우도 무슨 백성 타령하며 용맹히 싸우는 그런 의병장으로만 기억되는데 얘가 선조한테 쓴 상소문 보면 존나 장문이고 고대 중국사나  고대 조선사나 유교 성리학적 군주와 신하의 도리에 대해 줄줄이 꿰고있음. 근데 사극에선 그저.... 

조선의 왕 '세종(世宗)'이 한글을 만든 이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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조선의 왕 '세종(世宗)'이 한글을 만든 이유 세종(본명 : 이도)의 아버지 '태종(太宗 : 본명 =이방원)'은  백성이 사또 고소 못하게 법을 만들었다. 그런 괴상한 법을 만든 이유는 아랫것이 윗 사람한테 개기는게 버릇 없다는  성리학 가르침의 실현이었다. 물론 지방 세력의 성장 억제와 중앙 집권 강화가 목적이지만  이로 인해 애꿏은 백성이 사또의 탐관오리질의 희생물이 되었다. 그런데 세종은 이 법을 아름답다고 평가했고,  신하들 일부가 여러번 이 법의 부작용을 말했지만 세종이 전부 개무시했다. 세종은 결국 백성이 사또한테 하소연을 하긴 해야되니  그들이 자기 의사를 쉽게 말하고 쓸수있는 글자의 창제 필요성에 눈을 떴다. 더불어 그 글자로 고려 시절의 불교 문화에 젖어있는 백성들에게 유교 성리학의 삼강오륜 사상을 쉬운 글자로 된 동화책같은걸로 세뇌시키면 성리학에 기반해 건국하고  그에 맞춰 시스템이 쫙 짜인 이씨조선문명에  백성들이 로보트처럼 잘 따라주겠군 하며 한글을 만들었다. 한글은 '훈민정음'이라고 이름 붙여졌는데 '정음(正音)'은 '바른 음'이란 뜻으로 힘 없는 백성에게는 자기들의 말의 정확한 소리 표현을 할수있는 수단을 뜻하고,  양반들에게는 중국 한자의 정확한 발음 표기를 뜻한다. 결국 중국의 졸개를 자처하며 중국 하(夏),상(商),주(周) 세 왕조의 문자인 '한자(漢字)'를 숭배하는 양반들 조차 나중엔 세종의 발명품을 신의 발명품이라며  극찬할 정도가 되었다. 왜냐면 조선인들에게 중국 한자의 정확한 발음 표기 수단이 없었고 신라 시대의 '설총'이란 자가 쓴 '이두'라는 발음 표기 수단(일본 문자인 '히라가나,가타가나'의 원조)이 있었으나 불편해서 쓰기 힘들었다. 그런데 한글이 이걸 해결해주었다. 그래서 한글은 한국의 글자라는 뜻의 '한자(韓字)'라  불리지못하고 '훈민정음(訓民正音)' 즉 ...